일상

검은야망 2023. 2. 25. 21:21

저기 한 늙은이가 있다
늙은이는 성치 않은 무릎을 어렵게 가누며
젊은 시절 미뤘던 여유를 지금이라도 흉내 낸다

늙은이는 바람을 누리며
저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교복 입은 학생들을 막연히 바라본다

그의 늙은 주름에 우수가 고인다
그는 망가진 시절들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그도 꿈을 꿨었다
현재는 가슴속 먼지 쌓인 상자에 들어있어
쳐다보기도 두려운 것이겠지만

처음 그 어린아이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 꿈은
그가 지켜야만 했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지키기 위해 품에 꼭 안았지만, 현실은 잔혹했고
삶은 꿈을 빼앗기 위해 주사위를 던졌다

빼앗은 현실과 사회, 그리고 늙은 어른들
그들에게 분노하며, 마음속 그들의 각인을 새겼다

그는 분노를 표출하듯, 앞만 보고 달렸고
지친 몸에, 땀 범벅 된 순간이 되자, 세상을 다시 바라봤다
땀에 흐려진 각인은 어느덧 자신의 이름표가 되어있었고
그는 그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높이 올라 있었다

다시 방황하며 찾은 세상엔 그녀가 있었고
그녀와 영원을 기약하며 결혼한다

어느덧 생긴 토끼 같은 자식들
그는 자신의 결핍을 그들에게 몸 바쳐가며 가르친다
토끼 같던 자식들은 어느새 훌쩍 커, 곰 같은 자식이 되었고
그들은 결국 그를 떠난다

그는 슬플 틈도, 여유도 없이
잃어버린 숭고한 가치를 떠올릴 틈도 없이
그는 깜깜한 삶을 달려왔다
그는 삶이 터널인 줄 알았다
깜깜한 삶이 언젠가는 멎고 밝은 삶이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늙었고
밝은 삶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어렵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는 집 앞 공원으로 나아간다
그는 벤치에 앉아있다

늙은이는 잠시 지긋이 학생들을 바라본다
밝게 웃는 그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늙은이는 잠시 숨을 내쉬며
빛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스로 눈을 감고 있었기에
세상 어떤 것도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

늙은이는 웃는다.
늙은이는 거미줄과 먼지 가득한 곳으로 가
잠시 잊고 있던 꿈의 상자를 열어본다

늙은이는 다시 웃음 짓는다.
.
.
.
부드러운 바람 부는 공원 벤치에 한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따스한 빛을 쬐며 지긋이 웃는, 순수했던 꿈을 간직한 이가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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