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존재에 대한 생각

검은야망 2023. 12. 28. 22:09

인간 의식의 현시는 대상의 껍질을 벗겨낸다. 대상은 의식의 시선 하에서 자신의 껍질을 벗는다. 대상의 벗겨진 껍질은 본질적으로 ‘펼쳐지는 존재’ 안에 있다. 인간은 대상을 펼쳐내고, 그러한 펼쳐짐은 언어를 매개한다. 언어의 고도화는 펼쳐짐의 고도화와 마찬가지이다. 펼쳐짐이 앞으로 전진해나갈 떄마다, 대상들은 더 잘게, 그리고 섬세하게 펼쳐져나간다.
대상은 은밀한 곳에 존재를 숨기고 있다. 그러한 존재에 대한 지향은 대상을 벗겨내어 존재를 이해하려고 한다.
또한 언어의 고도화는 대상에 대한 지향적 측면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색이라는 관념이 존재하기 전까지, 우리는 대상의 색을 현시하고도 그 차이를 쉽게 발견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색이란 관념이 생김으로써 존재는 조심스럽게 색의 층위에서 옷을 벗는다. 이러한 언어의 고도화는 차이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존재에 대한 해석은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빈 구멍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채워놓는다. 그러한 존재는 언어로써 대체되며, 언어는 살포시 그늘에 숨겨진 존재를 가려놓는다. 대상의 존재 측면을 지향하기 쉬운 방법은 이미 말할수 없는 곳을 매개하여 벗겨진 대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존재를 바라보는 눈을 혼탁하게 만든다. 존재는 존재를 지칭하는 언어의 존재자로 대체되어, 인간이 탐구를 멈추도록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대상의 존재는 벗겨진 껍질에 의해 다시 은밀히 가려지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작업은 언어가 은폐한 측면을 찾아내고, 다시 존재를 지향하도록 인간의 혼탁해진 눈을 닦아주는 것이어야만 한다.
인간은 펼쳐진 내용을 발화를 통해 기표로 만들어서 뱉는다. 그러한 기표는 헬륨이 들어간 풍선처럼 상공으로 올라가 하늘을 살포시 가려놓는다. 우리는 위에 올려진 기표 뭉치를 보고 이해하고 소통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인간이 만든 기표에 역으로 지배당한다. 기표는 역사적으로 축적되며, 과거의 인간들의 기표들도 공간에서 차곡 차곡 쌓아올려져 있다. 그러한 쏘아올린 기표들은 그림자가 되어 인간들의 저편에 자리잡는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기표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며, 기표를 내화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펼쳐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펼쳐져 멈춰있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펼쳐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펼쳐짐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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