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언어의 본질에 대하여

검은야망 2024. 11. 3. 16:02

*언어의 본질에 대하여


(서론)

언어란 무엇인가? 통상 언어는 소통을 하기 위해 쓰이는 음성, 문자 따위의 소통 체계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언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어떻게 체계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식되며 소통성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언어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1) 체계로서의 언어 (2) 언어 체계를 생산하는 힘 (3) 언어의 경계 로 쪼개서, 하나의 종합적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따라서 기존 언어학자들의 견해와 의견을 어느정도 인용하고 해체하면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또한 모든 논의는 독립적이지 않으며, 하나의 일관적 주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논의는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이해 없이는 무의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에 대한 부분적 관점을 파악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논의가 갖고 있는 일관적 측면을 포착하는 것이 이 글을 더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거리감을 갖고 관망하면서 독해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체계로서의 언어

체계로서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19세기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에 의해서 중요하게 나타났다. 소쉬르의 주장을 요약해보겠다. 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랑그라는 구조적 체계와 그를 실현시키는 실천적 발화인 파롤로 구성된다. 이때 랑그라는 구조적 체계의 몸을 이루는 것은 바로 ‘기표(시니피앙)’이다. 기표는 분절된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로 볼 수 있다. 한글에서, ㄱㄴㄷㄹ.. 등의 기호들이 기표이며, 그것이 발음될 때 나타나는 음성 기관을 거쳐 나타난 청각적 이미지 또한 기표이다. 여기서 기표와 기표는 대립적인 차이를 가짐으로써 구분되어 인식된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표가 구분됨으로써 각각의 기표에 기의(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고 말하며, 이를 의미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철저히 자의적인 것이다. [사과]라는 시각,청각적 이미지와 실체 지시체인 붉은 사과가 연결되는 것은, 어떠한 보편적 필연성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연적으로 연결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랑그’라는 기호들의 체계 내부에서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필연성을 갖게 되며, 구조 내부의 사람들은 똑같은 지시 구조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소쉬르의 논의가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가? 나는 소쉬르의 이러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기표와 기표간의 ‘대립적 차이’, 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연결(의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기표와 기표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일상적 직관에 의거해서 봤을 때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기표와 기표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언어의 발화자 또는 인식자(수용자)로써, 차이를 생산하고 차이를 차이로써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또한, 인식자 내부에 기표와 기의를 연결짓는 정보처리가 나타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러한 귀결이 과거의 구식 언어학자에게서 나타났다는 사실이 다소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소쉬르’라는 언어학자의 주장 전체가 아니라, 소쉬르의 부분을 통해 사유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소쉬르라는 전체 학자에 대한 비판을 나의 주장에 대해 비판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일 것이다. 또한, 기표와 기표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관점은 현대 음운론과 기호학에 대해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 인지과학에서는 의미있는 단위를 기준으로 범주를 구별하고 저장하는 ‘부호화’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히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 보다, 이 부분에 대해 깊이있는 사유를 요구할 것이다. 어쨌든, 원래 논의를 돌아가서 기존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표와 기표는 차이를 가지며, 이러한 차이는 생산되고 인식 되는데, 이러한 차이에 대한 생산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이를 생산하는 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이 지점에서 체계가 소통가능하기 위해서 언어를 가진 존재가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은 기존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 잠시 뒤로 미뤄두겠다. 


언어 체계를 생산하는 힘

앞서 (1)에서 다룬 것처럼, 언어에 대한 논의는 기표가 어떻게 인식되며, 그 기표들의 차이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인식론’의 영역에서 언어가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는 언어에 대한 인식론적 단초를 칸트의 ‘판단력’ 개념으로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칸트의 판단력 개념이란 무엇인가? 칸트의 판단력 개념은 일반적으로, ‘특수를 보편에 포섭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칸트의 관점에서 판단력은 (1) 규정적 판단력 과 (2) 반성적 판단력으로 나뉜다. 규정적 판단력은, 단순하게 먼저 주어져 있는 보편자(개념,원리,모델)을 통해서 특수자(개체,사실)을 규정하는 것이다. 간단히 예시를 들어보겠다. 저기에 구체적으로 실존하며 뛰어다니는 비글이 있다고 해보겠다. 우리는 저 비글을 보고 ‘개’라는 범주에 포섭해서 인식할 수 있다. 이때 ‘개’라는 보편자는 이미 있는 것으로, 우리는 새로운 집합이나 범주를 구성해내지 않아도, 저 비글이 ‘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 과정에서는 대상과 대상의 차이와 유사성을 근거로 대상의 범주를 판단하는 작용이 나타났을 것이다. 반면, 반성적 판단력은 기존의 보편자로는 구성되지 않는 특수자(개체,사실)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에 부합하는 새로운 원리를 모색하는 것이다. 다시 예를 들어보겠다. 동물학자는 종종 전혀 새로운 동물을 만나고, 그 동물을 판단하는 새로운 집합을 창조적으로 생산해낸다. 이 과정에서는 규정적 판단력으로는 규정되지 않는 개체(사실)과 그 개체에 대한 범주의 생산이 나타나기에, 반성적 판단력의 예시로 부합한다. 이러한 반성적 판단력은, 기존에 주어져있는 판단 기준 바깥에 나타나는 이질적인 무언가에 대해 판단하게 해주는 힘이다. 그 이름이 ‘반성’인 이유는, 기존 판단 체계를 재사유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의 판단력의 관점에서, 언어 체계를 들여다보겠다. 칸트의 관점에서 이 기호와 저 기호를 구별해낼 수 있는 인식 작용의 근간은 판단력이다. ㄱ과 ㄴ은 일단, 그 모양에서 대립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각적으로 구별된다. 따라서 우리는 ㄱ과 ㄴ이 다르다는 것을 지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 작용은 의미 체계와 소통 체계를 이루기 전에 지각에 수반된다. 따라서 판단력은 의미를 가진 언어 체계에 항상 앞서는 것이며, 그러한 차이들을 인식하고 발견해내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언어와 그 체계는 판단력에 의존한다. 그러면서 판단력은 단순히 차이를 지각하는 것을 넘어서, ㄱ과 ㄴ을 의미를 가진 기호로 부호화하게 되는데, 이 최초의 부호화는 반성적 판단력에 의한 것이다. 이때 ㄱ과 ㄴ은 의미에 대응될 수 있는 동일성을 가진 기표가 되며, 이 판단력을 통해 나타난 ㄱ과 ㄴ의 구별 원리는 다시 규정적 판단력에서 ‘이미 주어진’ 패턴이 되고, 계속 동일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게 될 것이다. 소쉬르의 관점에서 판단력을 통해 개체화된 기표들은 기의의 결합하는 의미 작용을 통해서 언어적 체계와 구조 내부에서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된다. 또는 객관적 언어 체계를 매개하지 않고 주체 내부에서 비언어적인 형태의 의미가 기표에 연결되는 의미작용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판단력의 작용은 지각적 차원과 판단력을 가진 주체 내부에서 머무르고 있기에, 아직 언어의 요건인 소통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나는 이 상태를 ‘주관적 부호화’라고 정의하려고 한다. 주관적 부호화는 언어를 생산하고 인식하게 하는 근간이 되지만, 소통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관적 부호 상태가 어떻게 소통성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통성의 획득과 승인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타자에 대한 사유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전혀 쉬운 논의가 아니기에, 기존의 논의를 먼저 정리한 후에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기표의 분절 이전에 논리적으로 선행되는 이질적인 대상의 발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이 논의를 다루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역시 간단한 논의가 아니므로,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다시 기존 논의를 정리하면, (1)과 (2)에서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나타나는 언어 체계 이론을 검토하고, 그 체계 이론의 발생에 대한 단초로 칸트의 판단력 개념을 재사유하여, 주관적 부호화가 언어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언어의 소통성과 발생학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앞으로의 논의는 언어의 소통성과 발생학적 측면을 해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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