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예전엔 철학에 진리가 있을 줄 알았다.

검은야망 2025. 1. 15. 20:09

예전엔 철학에 진리가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처음으로 철학적 사고를 시도했을 때 얻은 결론이 진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철학자들이 그 결론은 진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진실과 진리가 뭔지 궁금해진 듯 하다. 그래서 철학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면 당연하게, 철학자들이 말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나의 생각들을 전복해내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했다.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저것이 아닌게 아니네, 이것이 아닌게 아니네.

읽을 때면 머리가 아파왔다. 나의 정신 뿐만 아니라 몸도 새로운 사상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몸에 깊숙히 남아있는 염증이 일으킨 열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방인을 퇴치하기 위한 격렬한 발버둥. 이질적인 것에 대한 막연한 저항. 나는 끊임없는 구토감과 자살충동을 겪었다. 나의 정신은 샅샅이 조각나고 다시 붙기를 반복하며 절규했다. 그러한 절규는 나의 성대로도 새어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나는 매 순간 현재의 사상에 안주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나는 종종 지금의 나에 만족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상에 담긴 부조리를 인식한 순간, 나는 다시는 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죽음이 가까워질 때 나는 그것을 면해야만 했다. 결국 꺼내든 것은 철학 책이었다. 나는 상어였다. 헤엄치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는.

내가 처음 철학에 접근할 때, 많은 철학자들은 신비의 베일 뒤에 감춰져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신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곳에 들어가 철학자의 신탁을 듣고, 그 신탁을 들어야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철학자는 비록 잠깐이지만 신의 형상으로 나의 정신에 나타났고, 신의 후광을 등에 진 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조리한 인간임이 밝혀졌다. 후광은 푹 꺼졌고, 그 신비로운 형체는 너무나 천박한 형상으로 홀딱 벗겨져 있었다. 그는 그냥 천박한 인간이었다. 어떤 때에는 아름답고, 어떤 때에는 추하기 짝이 없는.

신비적 우상에게서 인간을 찾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신비에 몽땅 정신을 빼앗겨 그들의 몸과 정신을 탐닉하면서도, 나의 병신같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을 대지로 끌어내릴 때, 나는 항상 새로운 뼈들을 찾는다. 그 뼈들은 렌즈 모양이다. 나의 눈에 붙이면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보이게 된다. 그 새로운 것들은 종종 신성을 가진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추악한 악마의 모습이다. 나는 원하지 않음에도, 집요하게 누군가의 악마성을 발견하게 된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악마들. 삶을 찢어서 뜯어 먹는 악마들.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작아진다. 나는 점점 더 달라진다. 나는 점점 더 슬퍼진다. 나는 점점 더 기뻐진다.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유령들이 나의 눈에 아른거릴 때, 나는 그러한 유령에 맞서야만 한다는 무형의 감각을 경험한다.[ 나는 그들의 환상을 찢어야 한다. 그들을 해체시키고 도살하고 부활시켜야 한다.] 나의 정신에는 그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깃들고 있으며, 나는 도저히 그러한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러한 생각들은 종종 나만의 방식으로 실천되지만, 좆같게도 대부분 실패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들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나는 점점 더 집요해지고 때론 분노한다. 나는 진정한 '좋음'을 위해서, 그들의 '악'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존나게도 고독한 길이다. 솔직히 하기 싫다. 그런데 그들의 슬픔이 계속 나의 심장에 침투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안아서 보듬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목이 졸릴 때까지 꽉 안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더 눈물을 흘리고 절규할 것이다. 나의 얼굴에는 붉은 핏자국이 묻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혐오하고 싫어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도 해야만 한다.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욕망이야말로, 현재 시점에서 가장 그릇된 욕망이다. 나는 현재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환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과 화해해야 한다.
좆같은 일이다. 어쩔 수 없지. 누군가 나와 함께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해주길. 조금은 나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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