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1>
누군가의 장례에 참석한다는 것은 언제나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나는 지금 현기증이 나고 있다. 이곳은 어둑하면서도 잠잠한 빛이 비추고 있다. 검은 옷을 입어 유난히 얼굴이 그늘져 보이는 사내들이 보인다. 앳된 여자들의 얼굴은 왜인지 더 노랗게 떠 있다.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묘한 활기가 어색하게 맴돌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 작은 수다 소리. 그것들은 너무 위선적으로 느껴질 만큼 내게 크게 들렸다. 곤두선 신경, 주체할 수 없는 예민함, 가슴으로부터 두뇌로 올라오는듯한 씁쓸한 느낌. 나는 왈칵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이 장례식에 대해 묘한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세심함에 스스로를 묻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불쾌감을 걷어내기 위해 커피 한 잔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커피 한 잔이 대개 기분을 조금 더 낫게 해준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1층 카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라떼 한 잔 주세요.”
종업원에게 결제를 위해 카드를 건네주고 든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엇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맑은 정신에는 무엇도 깃들고 있지 않았다. 너무도 명확한 인식의 상태.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고통. 나는 스스로를 포크 따위의 물건으로 찔러. 고통을 토해내도록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유난히 그날의 커피는 맛이 좋았다. 원두 향의 짙은 풍미가 코로 들어와 감미로웠고, 아이스 라떼 특유의 시원한 우유의 목넘김은 훌륭하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커피 속의 카페인을 흡입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2층 상주실로 가서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새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기에,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는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찬란한 광채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곧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3층을 눌렀다.
뚜벅, 뚜벅.
나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 전역으로 울려 퍼졌다. 이미 안에 있던 가족들은,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도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 뒤에 서려 있는 슬픔의 향기를 나는 맡을 수 있었다. 아니, 내가 그들이 슬퍼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조차 슬퍼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신발장에 그것을 넣얶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막바로 그녀의 영정 사진이 보였다. 마지막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활기가 넘치고 화장을 예쁘게 한 모습이었다. 나의 신경은 또다시 곤두섰다. 이마의 핏줄이 잠시 바깥으로 튀어나온 느낌. 그러나 나는 곧 진정되었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그녀에게 술을 따라드리고 한 번 반절을 했다. 입관식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게는 여전히 아무런 감각도 없이 건조했다. 바라는 눈물은 조금도 쏟아지지 않았다. 마치 막힌 하수구 구멍처럼, 아무런 물기도 없이 말라 비틀어진 배설물들과 쓰레기더미처럼.
피로와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잠시 상주실의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봤다.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되뇌면서. 그러나 아까 마신 커피 때문인지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은 너무도 맑게 하얀 천장에 달린 노란 형광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다시 눈꺼풀을 만지작거리며 소파의 깊은 틈으로 몸을 뒤척이고 파고들었다. 포근해 보이는 하얀 베개 위로 얼굴을 폭신히 묻었다. 잠깐의 휴식이 필요했다.
<2>
머리를 비워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쿰쿰한 기분이 나의 머릿속을 때리고 있었다. 오늘이 입관식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을 열자 존재하던 그녀의 기괴할 정도로 하얗고 푸르며 신비로워 섬뜩함을 느끼게 할 모습. 그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떠다니며, 떠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 이미지는 나의 상상 속에서 떠다니던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사실 실재를 마주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염이 된 몸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임종 직전, 모든 힘늘 소진해 누렇게 떠버린 고통서린 안식의 육체를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별 직전, 명료해진 그녀의 슬픈 목소리, 울려퍼지는 목소리. 나는 그 이미지를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입관해 계시는 할머니를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