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자와 관계 맺는 존재이다. 우리는 타자와 관계 맺음으로써 타자를 자신에게 포섭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는 타자와 나를 강력하게 구별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타자를 알아가고 싶어 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원하기도 하는 한편 타자와 나를 구별하고 때론 비교하고자 한다. 타자는 나의 일부이면서, 내가 아니여야 하는 역설적 존재가 된다.그러면서 우리는 타자를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과 배척하려는 마음에서 모순됨을 느끼며, 이러한 느낌은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배척성은 타자와 나를 구별하는 조건들에 의해서 증대된다. 우리는 타자를 알고 싶어 하는 존재임으로, 타자를 수용할 때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자가 타자다워지는, 나의 일부가 아닌 듯한 낯섦을 주는 조건들까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나와 타자를 구별하게 되며, 그러한 과정에서 배척성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한 배척성의 인식은 타인을 나의 일부로 포섭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가능한 욕망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그러나 타자를 원하는 것은 맞기에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결핍을 느끼게 되고, 허무함을 느낀다.
이처럼 수용성은 절대로 실현될 수 없지만 실현하고 싶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결핍을 낳는다.
우리는 타자를 나에 의해서 정의되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타자를 타자 자체로 바라본다면 타자를 더 잘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타자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타자는 완전히 나의 일부로써 사유되게 된다. 이렇게 포섭된 타자는 타자로 느껴지지 않고, 나 자체로 느껴지게 된다. 나의 영감이나, 생각 자체로 느껴지게 된다. 마치 나의 사고 속에 그들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의 정신세계의 연장으로 관계가 기능하게 된다.
사랑은 상대방을 완전히 나의 일부로 포섭하는 것이며, 타자를 타자답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할 때 배척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는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나는 그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며 정신세계의 완전한 연장을 이룩하려고 한다. 또한 상대방은 배척성이 발휘되지 않는 이로 유일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현실세계에서 불완전하게 이행된다. 우린 타자를 바라볼 때, 완전히 배척성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척성에서 보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맞다.) 이러한 불완전한 사랑은 우리에게 모순감을 제공하고 우리는 그러한 모순 속에서 고통, 아픔 슬픔 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타자를 나의 일부로써 포섭하고자 하는 욕망은 몹시 강하여, 우리는 모순됨을 인식하면서도 다시 타자를 포섭하려고 한다. 비록 불완전한 포섭이더라도 그 체험이 강렬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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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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