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와 개인에 대하여>
*담화
인간 존재는 담화에 둘러 쌓여 있다. 담화는 인간들의 동기,의지 그리고 가치관 그리고 상호적 존재의 투쟁 그리고 연출에 의해서 구성된다. 따라서 모든 담화는 개인들의 내적, 그리고 상호적 관계로써의 외적인 특성들이 전부 반영되어 있는 결과다. 담화는 주체와 타자를 연결짓는 연결망으로 기능하며, 장을 형성한다. 이러한 장에 놓인 사람은, 마치 자기장 위의 자석처럼 끊임없이 그 장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침투라고 한다. 담화 참여자는 담화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그 장의 영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수동적 수용이 바로 침투이다. 침투는 어떤 담화 활동에서나 마찬가지로 항상 나타난다. 누구나 어떤 개인과 얘기할 때, 그 개인의 언어 습관이나 가치관 등을 자연스럽게 암묵적으로 익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침투는 바로 그러한 것이다. 개인이 의식하기 전에 일어나는, 어떤 전 의식적 특성. 그것이 바로 담화의 작용이다.
모든 개인들은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로 사고함으로써, 이러한 담화의 영향 하에 항상 놓이게 된다. 이러한 담화는 단순히 언어적 기표 기호들만 포함하지 않으며, 언어학에서 종종 비언어적이라고 불리는 제스처와 행동 등을 포함한다. 그러니, 개인의 속성은 암묵적인 형태 혹은 무의식적인 형태로 타인과의 관계, 그러니까 담화에 의해서 영향 받는 것이다.
*언어 게임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화용론적인 언어의 특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는 맥락적인 것이다. 주체와 주체는 상호적인 언어 게임을 통해서 연결되고 접속한다. 그러면서 어떤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언어적 규칙 하에서 언어 게임이 이뤄진다.
여기서, 이러한 언어적 규칙이 선험적 형태, 담화 또는 언어게임 이전에 존재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 지점을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하게 ‘삶의 형식’이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내 생각에 이 지점에서 삶의 형식이 어떠한 역사성을 갖고 나타나는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고고학적인 탐색이 필요한 것 같다. 특정 언어적 규칙이 어떻게 기능하고 나타나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래서, 모든 담화-여기서는 언어 게임-는 일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변용되어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 담화는 사용됨으로써 자신을 보존하고, 그 담화들에게 영향을 받은 개인은 다시 그 담화를 사용함으로써 담화를 내재화하는 것이다. 종종 어떤 담화는 사용되지 않아서 폐기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담화는 단순히 어떤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담화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구성해낸다. 담화는 단순히 망각되지 않은, 재현의 이미지가 아니라, 개인의 발화에 의해서 항상 생성되고 있다. 즉, 어떤 담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항상 ‘현존’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담화는 개인에게 의존하며, 개인은 담화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에 따라서, 담화와 개인 다른 개인은 긴장 상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긴장 상태는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며, 개인을 지배하는 담화의 침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개인과 개인의 대응 양상,그리고 개인과 담화의 상호작용
개인은 개인은 담화의 장 위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특정 개인은 다른 개인과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태세를 취하게 된다. 여기서 태세를 간단히 도식화하자면, 면역/수용 이다. 개인의 발화는 담화의 장의 부분을 형성하고, 그 장의 부분은 다시 귀를 통해서 다른 개인에게 흡수된다. 이때 이 개인은 특정 담화에 대해서 인식적으로 거부하거나, 믿게 된다. 거부하는 것이 면역이며, 믿는 것이 수용이다. 보통 ‘수용’의 경우만 담화의 침투적 양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면역’도 담화의 침투적 양상이다. 이미 담화가 거부/신뢰 라는 항을 제시하는 영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면역에 대해서 말해보자. 면역은 담화 위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그 담화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일어나는 작용이다. 개인은 담화 내 발화의 침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내야 한다. (어떤 발화는 종종 단순히 미신적이거나 주관적이고 또는 광기적일 수 있다. 이러한 의문점이 드는 발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서 개인의 자아는 타인이 아닌 것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구성해냄으로써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는 개인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방어가 과도해졌을 때, 쉽게 피로해지며 탈진하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개인은 면역작용 대신 그 발화의 침투 작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내면화 할 수 있다. 이때 담화는 보다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작용하며, 다른 개인의 발화는 개인의 자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아를 소멸시키거나 보존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면역의 양상 중, ‘연출’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 연출은 통상 배우나 영화 감독이 수용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의도를 적절히 보이는 것을 말한다. 담화 활동에서도 연출은 존재하는데, 여기서 연출이라는 단어는 ‘배우’처럼 스스로를 ‘드러낸다’라는 뤼앙스를 갖게 된다. 배우는 스스로가 아닌 것을 연기하는 사람인데, 그러면서도 그 순간 도취됨으로써 그 배역 자체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배우는 항상 자기가 아니면서, 자기라는 이중적 상태에 놓여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아닌 것을 스스로로 연출하고 도취됨으로써 발화를 담화의 장에 전달하고 영향을 가한다.
카테고리 없음
담화와 개인에 대하여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