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하 작가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변형된 인체, 폭력적인 이미지를 통해 수용자에게 지속적으로 불쾌를 유발한다. 일반적으로 불쾌는 피해야 할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작가는 역설적으로 이 불쾌를 향유하라고 요구한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자극과 변형은 일종의 신성을 부여받으며, 이를 통해 수용자는 제의적 체험에 가까운 독특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의 글과 작품을 분석해보면, 그의 사유가 기독교적 세계관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사유는 몸과 영의 이분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독교적 사유는 영의 우위를 강조하며, 몸을 단지 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이 과정에서 몸은 악하거나 천박한 존재로 비하되며, 정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속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독교적 금기로 인해 몸을 죽이는 극단적 행위는 금지되기 때문에, 몸에 가해지는 변형과 고통은 정신적 해방의 또 다른 통로로 작용한다. 유성하 작가는 이러한 몸의 변형을 작품 속에서 구현하며, 이를 통해 기독교적 쾌락의 간접적인 표현을 시도한다. 이러한 감정은 작품을 마주하는 수용자에게도 전달된다.
그런데 우리가 타자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몸뿐이다. 타자의 영적 진실성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으며, 언어는 이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종종 왜곡되거나 몸을 가진 매체로 변질된다. 결국 우리는 타자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으며, 타자 또한 우리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타자와의 합일과 사랑을 지향하는 기독교적 이상을 근본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만든다. 더욱이 기독교 세계가 '말'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언어 자체가 몸과 영의 균열을 내포한다면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거짓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러한 기독교적 모순을 드러내며, 진실된 것은 몸이라는 사유로 귀결된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피와 같은 붉은 색은 몸의 근원적 역동성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수용자가 몸의 본질을 느끼고 향유하도록 한다.
결국, 유성하 작가는 기독교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를 해체하려는 이중적 태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러한 이중성은 그의 작품이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띠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언제나 현실을 넘어선 영역을 탐구하며,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무언가를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면적 진실에 대한 깊은 사유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사유가 라캉의 니체 독해와 리오타르의 숭고 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작품 속 인체 변형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표현이 프란시스 베이컨의 예술적 영향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결론적으로, 유성하 작가의 작품은 기독교적 사유와 초현실주의적 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강렬한 색채와 인체 변형을 통해 몸과 영, 진실과 거짓,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을 탐구하며, 수용자로 하여금 이중적이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충격에 머물지 않고, 깊은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현대 예술이 가진 사유의 확장과 불편함의 미학을 잘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유성하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앞으로도 예술과 사유, 그리고 경계를 탐구하려는 진정성 있는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화적 창조와 파레시아적 진실 (0) | 2024.12.22 |
---|---|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와 나의 비판적 성찰: 흄의 상상력 개념과의 연결 (2) | 2024.12.21 |
광고의 유혹에 대한 단상 (0) | 2024.12.18 |
기호학과 신화: 진실과 거짓의 유혹적 구조 (0) | 2024.12.12 |
신화에 대한 중심적 아이디어-리오타르의 서사게임을 중심으로 (0) | 2024.1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