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난 이래로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 거만한 사람, 유쾌한 사람 등. 이러한 사람들 중 나와 관계를 맺게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인성적인 면에서 단점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바꾸려고 하는 시도가 몇번 있었다. 화를 내면서 얘기해본적도 있고, 울며 얘기해본적도 있고,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얘기를 해 준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느낀 것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사실. 난 이태껏 사람의 인성과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해왔기에 "사람은 바뀔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였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던 적이 많은데, 결과는 나에게 절망감만 가져다줄 뿐이었다. 과연 사람은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나는 그 의문에 대하여 진리를 찾고 싶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유로 첫번째는 자신이 틀림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몹시도 어렵다는 것이다. 틀림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못난 부분을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어떤 이가 갑자기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으려한다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로 그 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 번째는 과도한 열등의식이다. 열등의식은 질투로 이어지게 된다. 질투는 바른 것을 보지 못하게 막는다.
한 상상을 해보겠다. 내가 40세고 백수인데, 취업을 해서 돌아온 동생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았다. 그 때 부러움은 열등감과 자기 혐오로 곧 이어질 것이고 그 자기혐오는 다시 자기합리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후 동생에게는 가시 돋힌 말들을 계속 던지고 있을 것이다.
열등감을 가진 자는 이미 두 귀를 막고 있을 지 모른다. 열등감을 가진 이에게 진심을 다해 "너는 자존감을 올려봐"라고 조언했을 때 진정으로 받아들이겠는가? 그저 아니꼬운 소리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사람은 바뀌지 않는것이 아닌가 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People do not like to think. If one thinks, one must reach conclusions. Conclusions are not always pleasant.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결론을 내야 한다. 결론이 항상 유쾌하지는 않다.
헬렌켈러가 남긴 명언 중 하나이다. 유쾌하지 않은 결론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공자의 논어에서는 사람을 3가지로 분류를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 배워서 아는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곤란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곤이학지자(困而學之者), 그리고 곤란을 겪고 나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곤이불학(困而不學)이라 했다.
곤이학과 곤이불학의 자들은 조언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배워서도 알지 못하는 자들인데, 조언을 해준다고 어찌 듣겠는가.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자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라는 말은 틀렸다. 배움을 원치 않는 이들이 바뀌지 않을 뿐이다.
배움을 원치 않는 이들이 바뀌려면 배움을 원해야만 한다. 하지만 배움을 원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순전히 운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배움을 원하는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이던가, 높은 덕을 쌓은 스승을 만나던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던가, 좋은 부모를 만나 그러한 태도를 교육받던가...
결국은 다른 사람을 바꾸려면 나 자신이 덕을 쌓아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 먼저 타산지석의 태도를 갖고 덕을 쌓아간다면 다른 이들을 바꿀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이 덕을 쌓아야 비로소 다른 이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위 내용 비판>
사람의 단점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상황과 규범이 만든다. 그런데 그 상황은 그 사람이 통제할 수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단점은 그 사람이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단지 어쩔 수 없이 그 단점과 동행하고 있는 것 뿐이다.
나는 이 글에서 단점있는 사람을 나약하고, 고침 당해야 하는 이로 묘사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또한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아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단점은 머리로 알아도 마음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극복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로 알게 하는 것" 뿐이다. 타인은 머리로 알게 하여 마음이 알 수 있게 도울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바꾸려는 시도는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변화의 원동력은 내면에서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 내면의 뿌리박힌 누적된 상황들을
하나 하나씩 어렵게 뽑아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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