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온다. 어제와 같이 무던한 하루가 오늘 또 지났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젖어있었다. 뜨거운 불안만이 심장을 조였다. 안경을 끼지 않아 뿌연 배경은 샅샅이 흩어진다. 나는 왜이럴까, 나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끝없는 반추는 나를 지옥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악마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무기력하다. 나의 다리는 어둠처럼 무겁다. 걸어야만 한다는 나의 투사된 의지만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오늘도 산책이다. 날이 쌀쌀해진 10월, 탄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림과 동시에 식히고 있었다. 그들은 눈 앞에 아른거리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듯 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만큼 그들은 처절히 달리는 듯 했다.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감정이 들었지만, 그들의 좁아진 시야는 이미 목표만을 향해있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가만히 쉬고 있었다 한들, 나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기고는 했다.
나는 애석하게도 그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나의 오만한 의식이 밉다. 종종 나의 욕망만이 빛난다. 간절하게 타오르는 집착 섞인 욕망. 나의 눈은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득 차곤 했다. 그러나 그 눈빛들은 종종 현실보다 빠르게 세상을 질주한다. 걸음거리가 느린 나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지쳐있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강렬하고 뜨거운 감정은 타오르지 못한 채 나의 오장육부를 연소할 뿐이었다.
차가운 밤이 왔다. 날이 쓸쓸한 건지, 나의 마음이 쓸쓸한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감각이 교차한다. 밤이 어서 지나서 낮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지로 태양을 보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고 싶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다. 쓸모없는 생각이다. 나는 피곤하며 나의 눈가는 이미 무겁게 내려앉고 있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눈을 부릅뜨며 코를 훌쩍인다. 나는 풀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달린다.
나의 산책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고 달려서 지칠 때까지, 아니 이미 지쳐있더라도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어서 더 처절하게 살아낸다. 이럴 때일 수록 더 몸부림을 치고,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더 앞으로 나의 뜀박질에 박차를 가해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버릴 것을 알기에.
나의 시야에서 원근법처럼 멀리에 있는 저 길의 끝이 보인다. 저것은 끝이 아니지만 나의 세계는 그곳이 다라고 말해준다. 탄천을 버겁게 뛰다 보면, 길게 이어져있는 저 산책로가 비행기의 활주로처럼 느껴지곤 한다. 뛰다 보면 몸이 붕 뜨며 떠오를 것 같다. 비행기처럼 이륙해서 저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이 느껴진다. 이카루스는 자신을 연료로 날아오른 비행기다. 나는 이카루스다. 삶의 기교를 자랑하기 위해서 날아오른 파랑새다. 나는 감겨가는 눈을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부릅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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